예전에는 골목이 놀이터였습니다. 따사로운 햇볕과 한줄기 소나기에 울고웃고 나무와 돌이 장난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언제 꽃이 피고지는지 관심은 없었지만 내 주변의 색깔이 변해간다는 사실은 알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주말에 우리 꼬마와 소행성에서 놀면서 아이의 놀이 방식이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캐릭터 장난감과 동영상만 즐기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물웅덩이에 첨벙대고 막대기 하나 들고 땅에 그림도 그리며 집과 그 주변을 뛰어다니며 좋아하더군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말 아이의 맑은 웃음을 보면서 집짓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두번세번 하게 됩니다. 빨리 들어가 살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사야 하는 것 아냐?" 집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가끔 얘기했던 말이다. 집을 짓겠다고 생각하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 선택의 순간은 나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2017년, 하루가 다르게 솟구치는 아파트 가격은 우리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부동산 뉴스를 볼 때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상승세를 붙잡지 못하면 재테크 경쟁에서 영원히 낙오할 것 같은 위기의식이 엄습했다. 정부이전으로 세종시에 내려왔지만 주어진 특별분양마저 놓쳐버린 우리는 재테크에 대한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었다. 더욱이 집을 짓겠다고 아파트를 정리했는데 그 사이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집은 사는 곳일까? 아니면 사는 것일까? 그 두가지는 분리하기 어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90년대 빌클린턴이 아버지 조지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적절하게 써 먹었던 선거구호다. 그런데 집을 지으면서도 결국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었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데 애당초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가장 잘못된 인식은 평당 300~350만원이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 시공사에 전체를 맡기고 허가방 도면으로 일반적인 집을 짓는다면 순수 건축비만 평당 350만원에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나만의 집을 짓는다는 작은 욕심이라도 갖고 있다면 2014년초 기준으로 평당 450~500만원을 순수건축비로 확보해야 한다. 그야말로 순.수.건.축.비....!! 순수건축비 밖에 건축관련 비용을 나열해보자...많다...! 1. 설계비..
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는 많다. 체계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책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집 짓기를 위해 여러 책을 읽었는데 그중 추천할만한 책은, 1. 집짓기 전에 꼭 알야할 모든 것 (김창균, 경향미디어) 땅 구입, 건축 설계, 공간배치, 시공, 시공후 유의사항 등 책 제목과 같이 집짓기와 관련된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고 관련된 체크리스트도 들어있다. 그 체크리스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다면 꽤 많은 준비가 된 것이다. 2. 집짓기 바이블 (조남호 등, 마티) 건축주, 건축가, 시공사의 대담 형식으로 건축 전과정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3건의 시공사례도 있다. 정보가 많으나 대담형식이라서 약간 산만한 느낌. 그러나 풍부한 설명과 사진 등이 있어 보면볼 수록 진가가 느껴진다. 3. 최고의 집..
"저희는 주로 그냥 단순하게 구워서 내놓기만 하는 소박한 빵을 만들고 있어요...단순하고, 간소하고, 그곳에서 일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中에서 내가 집에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 집을 통해 나와 가족, 이웃이 얻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첫번째, '따뜻함'이다. 집에 들어왔을 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햇볕이 늘 따뜻하게 들어오고 창문은 시원하되 불안할 정도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봄 가을에 바람이 기분좋을 정도로 잔잔하게 불고, 늘 안정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집이었으면 한다. 두번째, '소박함'이다. 집을 처음 보았을 때 '와~'하는 감탄사는 필요없다. 나혼자 도드라지게 잘난 ..
나는 왜 집을 짓는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면서 내가 반드시 대답하고 싶었던 질문이다. 누가 나에게 왜 집을 지으려고 하냐고 물을 때, 그리고 나의 딸들이 아빠는 왜 집을 지었냐고 물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만의 생각일지 몰라도... 집을 짓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이다. 지금 나의 큰 딸은 11살, 초등학교 5학년이고 우리 둘째 딸은 22개월이다. 우리 큰 아이는 대전 월평동에서 태어났고, 일산과 평촌 신도시에서 자랐다. 미국에서의 생활 2년도 아파트에서 생활했으니 녀석의 집에 대한 기억은 아파트가 전부일 것이다. 두 살이 채 안된 작은 아이도 벌써 두번째 아파트이다. 아파트는 추억이 사라지는 장소이다. 결혼하고 ..
집을 짓는 것은 집을 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였다. 아파트를 사는 것이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일이라면, 집을 짓는 것은 논술형 문제를 푸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파트는 평생 거기에서 거주한다는 생각이 없다. 앞으로의 투자가치를 보면서 평수와 예산을 정하고 교통, 학군, 리모델링 여부를 고려하여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그간 나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집을 짓는 일은 A에서 Z까지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디에 어느 정도의 땅을 살지, 어떤 평수로 어느향으로 배치할지, 방과 화장실을 몇개 만들지, 부엌과 거실은 어떻게 꾸며야 할지, 다락은 만들 지 말지, 계단을 어디다 배치할 것인지, 외장재와 내장재는 무엇으로 쓸지 등등 질문 목록만해도 끝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이 새롭고 즐..
언젠가는 집을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이 '지금'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급작스런 집짓기 결정은 나와 아내의 성향속에 충분히 잉태되어 있었다. 나의 잡다한 관심의 범위 안에는 언제나 건축이 있었고, 아내는 그것을 실행할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객관적인 조건도 그 결정을 실행하는 충분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직장이 세종시로 바뀌면서 가족들과 함께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수도권에서의 생활과 시원섭섭한 작별을 하게 된 것이다. 대전에 살았지만 세종시가 정착되면 그곳에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세종시 아파트를 보러다녔다. 공무원 특별분양의 기회는 이미 포기한 상황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아파트는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