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것은 집을 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였다. 아파트를 사는 것이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일이라면, 집을 짓는 것은 논술형 문제를 푸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파트는 평생 거기에서 거주한다는 생각이 없다. 앞으로의 투자가치를 보면서 평수와 예산을 정하고 교통, 학군, 리모델링 여부를 고려하여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그간 나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집을 짓는 일은 A에서 Z까지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디에 어느 정도의 땅을 살지, 어떤 평수로 어느향으로 배치할지, 방과 화장실을 몇개 만들지, 부엌과 거실은 어떻게 꾸며야 할지, 다락은 만들 지 말지, 계단을 어디다 배치할 것인지, 외장재와 내장재는 무엇으로 쓸지 등등 질문 목록만해도 끝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이 새롭고 즐..
언젠가는 집을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이 '지금'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급작스런 집짓기 결정은 나와 아내의 성향속에 충분히 잉태되어 있었다. 나의 잡다한 관심의 범위 안에는 언제나 건축이 있었고, 아내는 그것을 실행할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객관적인 조건도 그 결정을 실행하는 충분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직장이 세종시로 바뀌면서 가족들과 함께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수도권에서의 생활과 시원섭섭한 작별을 하게 된 것이다. 대전에 살았지만 세종시가 정착되면 그곳에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세종시 아파트를 보러다녔다. 공무원 특별분양의 기회는 이미 포기한 상황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아파트는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