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생각하다

집짓는 일은 복잡한 논술시험

둔필승총(鈍筆勝聰) 2014. 5. 1. 09:48

집을 짓는 것은 집을 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였다. 아파트를 사는 것이 사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일이라면, 집을 짓는 것은 논술형 문제를 푸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파트는 평생 거기에서 거주한다는 생각이 없다. 앞으로의 투자가치를 보면서 평수와 예산을 정하고 교통, 학군, 리모델링 여부를 고려하여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그간 나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집을 짓는 일은 A에서 Z까지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디에 어느 정도의 땅을 살지, 어떤 평수로 어느향으로 배치할지, 방과 화장실을 몇개 만들지, 부엌과 거실은 어떻게 꾸며야 할지, 다락은 만들 지 말지, 계단을 어디다 배치할 것인지, 외장재와 내장재는 무엇으로 쓸지 등등 질문 목록만해도 끝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이 새롭고 즐겁지만 곧 지치게 된다. 특히 내가 갖고 있는 예산을 고려하면 할 수 없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은 내가 집(아파트)에 맞춰서 살았지만, 이제는 나에게 맞는 집을 지을 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결국 '예산에 맞는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각오를 다지며 집짓기를 향하는 길을 가다가도 "편리하게 아파트에 살면 그만인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거지?"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러가지 생각끝에 다다른 질문은 두가지였다. 나는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꿈꾸는 공간은 무엇일까?